영원한 딴따라를 꿈꾸는 패션인, 국기형
내가 국기형 사장을 만난 건 2000년 전후 이대상권에서다. 업계 사람들이 이대의 터주대감이라며 국기형 사장을 소개했다. 작은 키에 작은 몸집, 그리고 무언가 부끄러워 하는 듯한 말투. 하지만 조근조근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만다.
당시 이대상권은 확장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보세 상권이었던 이대 상권에 패션 브랜드가 진출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때문에 임대료가 상승하고, 그 자리에 있던 매장은 다른 곳으로 거점을 옮겨야 하는, 요즘 말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 그 때 이대에서 밀려났던 보세 매장들이 홍대에 자리잡았다. 그 때만 해도 홍대 보다는 이대가 더 핫한 상권이었다.
당시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이대상권에 진출하기 위해 국기형 사장을 찾았다. 그래서 국 사장은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브랜드 매장을 운영했다. 한 신규 브랜드는 국기형 사장에게 가두점 유통과 마케팅을 책임져달라며 고문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런 시대였다. 지금처럼 가두점이 활성화되기 이전이었다.
국기형 사장은 원래 가수를 꿈꿨다. 중앙대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20대의 그는 ‘코카콜라’의 CF 모델에 발탁될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였다고 한다. 그는 노래와 춤을 연습했고, 앨범 녹음을 끝내고 앨범 자켓에 들어갈 사진까지 찍었다. 그런데 하늘은 그에게 가수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방송 데뷔를 앞둔 국 사장은 막바지 연습 도중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결국 앨범은 냈지만 가수 데뷔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당시 그의 데뷔 앨범 제목은 한국사람이다.(사진)
이후 국 사장은 시련을 딛고 방배동에 ‘카루소’ 매장을 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방배동에서 이대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30년 동안 패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딴따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수의 꿈이 좌절됐지만 1996년 베토벤뮤직이라는 기획사를 세웠다. 베토벤뮤직에서는 1세대 아이돌그룹 8명의 오빠, O.P.P.A가 탄생했다. OPPA는 오빠의 영어 발음이라고 한다. 당시 OPPA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도 하고, CF도 찍고 승승장구했다. 이후에도 국 사장은 여러 연기자와 뮤지션을 발굴하고 데뷔시켰다. 국 사장을 거쳐 간 연예인 중에는 배우 조인성과 비투비 이민혁도 포함돼 있다.
연예계 생리가 그런건지 국기형 사장은 여러 번의 아픔을 겪었다. 국사장은 재기와 좌절을 반복하면서도 이대 상권을 지켰다. 이대상권을 지키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다. 요즘 그는 패션쇼현장을 누빈다. 그는 요즘 모델들과 함께한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모델들과 함께 캣워크를 따라다닌다. 국 사장과 함께하는 이들은 단순 모델이 아니다. 그들은 연예인을 꿈꾼다. 30여년전 국기형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